우리가 알고 있는 영양 정보, 정말 정확할까? — 50년 된 데이터가 당신의 식품 라벨에 쓰이는 현실
우리가 식료품점에서 제품을 고를 때 가장 먼저 확인하게 되는 정보 중 하나는 ‘영양 성분표’입니다. 칼로리,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비타민 등 다양한 수치를 바탕으로 우리는 건강한 선택을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데이터의 신뢰성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으신가요? 놀랍게도,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이 영양 정보들은 50년 전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성된 경우가 많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전 세계 식품 영양 데이터베이스,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식품 영양 데이터의 기반은 바로 ‘식품 성분 데이터베이스(Food Composition Databases, FCDBs)’입니다. 이 데이터베이스는 식품에 포함된 영양소들 —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비타민, 미네랄, 항산화 성분 등 — 의 수치를 담고 있어 영양사, 보건 당국, 연구자뿐만 아니라 농업 정책 입안자들에게도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그러나 세계 각국의 데이터를 분석한 최근 연구 논문(Frontiers in Nutrition, 2025년 발표)에 따르면, 이 중요한 데이터 중 상당수가 이미 오래전 데이터에 의존하고 있고 정확도와 접근성 또한 현저히 낮다는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해당 연구에서는 전 세계 110개 국가로부터 수집된 101개의 식품 성분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 단지 30%만이 일반인도 쉽게 접근할 수 있음
- 기존 데이터와 호환 가능한 시스템을 제공하는 사례는 69%
- 데이터를 재사용할 수 있는 형식은 43%에 불과
- 39%는 지난 5년간 단 한 번도 업데이트되지 않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지역 간 불균형입니다. 유럽, 북미, 동아시아 등 선진 국가들의 데이터베이스는 상대적으로 더 정교하고 자주 갱신되지만,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중남미 일부 국가에서는 여전히 1960~70년대에 수집된 데이터를 사용하거나 데이터 자체가 부재한 경우도 드뭅니다.
영양소 데이터 부실이 가져오는 심각한 영향
우리의 식문화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 세계화, 이주, 도시화 등으로 인해 식재료와 조리 방식이 다변화되고 있음에도, 국가 식품 정책의 근거인 데이터는 이 시대적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국가의 아동 급식 사업, 비만 예방 정책, 당뇨 관리 식단 표준화 등은 모두 정확한 식품 성분 정보를 기반으로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이 오래된 정보에 의존하면, 필요한 영양을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잘못된 정보를 기반으로 한 건강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또한 많은 소수 민족이나 원주민 공동체가 오랜 시간 계승해온 전통 식재료들은 영양 데이터베이스에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공식적인 영양 정책에서 완전히 배제되며 점차 시장과 문화에서 사라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현대 식품의 영양 분석, 과연 충분한가?
기존 데이터베이스는 대부분 38개 정도의 영양소(예: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나트륨 등)만을 추적합니다. 그러나 최근 과학 기술은 메타볼로믹스(Metabolomics), 질량 분석기(Mass Spectrometry) 등의 첨단 기술을 활용해 식품에 포함된 수만 가지 생리활성 물질(항산화제, 식물화학물질, 펩타이드 등)을 정밀 분석할 수 있습니다. 식품은 단순한 '열량 수치' 이상의 정보를 담고 있는 복합체이며, 이런 수준까지 분석할 수 있는 데이터가 필요한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주기율표처럼’ 식품을 분류하는 새로운 시도: Periodic Table of Food Initiative(PTFI)
이처럼 오래되고 부족한 FCDB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보건기구(WHO), 미국심장협회(AHA), Alliance of Bioversity International and CIAT 등이 협력하여 ‘식품의 주기율표 (The Periodic Table of Food Initiative, PTFI)’를 출범했습니다.
PTFI의 가장 큰 특징은 전 세계 다양한 식재료 — 그 중에서도 기존 데이터베이스에 포함되기 어려웠던 지역 특산물과 전통 식품 — 을 정밀 분석하여 30,000개 이상의 생체분자를 식별하는 점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데이터를 누구나 접근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FAIR 원칙(Findable, Accessible, Interoperable, Reusable)’에 따라 공개하고 있습니다. API 기반 시스템과 오픈소스를 통해 정부, 연구자, 기술 스타트업 누구든지 활용할 수 있어 영양과 식품 관련 혁신을 이끌고 있습니다.
국가와 기업도 움직이고 있다
2024년 기준, 유럽연합은 식품 영양 데이터와 관련한 법제 정비를 추진하여 라벨링에 사용할 데이터의 출처와 최신성 기준을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미국 농무부(USDA) 또한 기존 FCDB의 API 서비스를 현대화하여 사용자 접근성을 높였습니다.
한국의 식품의약품안전처 또한 ‘국가 식품성분표’의 고도화를 추진 중이며, 특히 전통 식품과 특산물 관련 정보를 체계화하는데 힘쓰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정책은 단순히 소비자 정보 제공의 목적을 넘어서, 지역 식문화 보존과 고부가가치 농식품 산업의 기초 자료로서의 가치를 높입니다.
모든 인류가 알아야 할 권리: 내 식품 속 성분은 무엇인가
오늘날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풍요로운 먹거리 환경에 살고 있지만, 그 내용물이 과연 건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생각보다 많은 정보가 누락되어 있습니다. 기술이 발전한 지금, 식품의 분자 단위 분석은 더 이상 난이도 높은 작업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를 가능하게 할 시스템, 인프라, 교육, 국제 협력이 여전히 부족합니다.
식품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지역 식문화와 생태계를 존중하며, 시대에 맞는 영양소 기준을 사회 전반에 적용하는 것 — 이것이 진짜 '건강한 식생활'의 시작입니다.
결론: 식품 정보, 이제 다시 정의해야 할 때
단순히 칼로리를 줄이고, 덜 짜게 먹는 것을 넘어서, 우리는 식품 속 ‘보이지 않는 정보’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잘 정리된 식품 데이터는 미래 식량 안보, 지속 가능한 농업, 건강 증진, 그리고 전통식품의 보호까지 다양한 사회적 문제의 해결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미래의 식품 정책은 50년 전의 데이터가 아닌,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식탁에 올라오는 식품의 최신 정보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 “내가 먹는 이 음식, 정말 내 몸에 무엇을 주고 있는 걸까?”
➤ 관련 자료: Frontiers in Nutrition 연구 원문 보기
➤ PTFI 공식 사이트: https://www.periodictableoffood.org